같은 장소에 연달아 두 번 오는 것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 시기엔 근처에 괜찮은 캠핑장을 찾는 것이 어려운 데다 친구와 함께 가기 위해 2 사이트를 붙여서 예약하기가 너무 어려웠기 때문에 예약이 가능한 곳이라면 어디든 갈 마음으로 선택했다. 콘셉트는 크리스마스, 이른 감이 있지만 원래 추워지면 무조건 크리스마스 아닌가? 크리스마스 콘셉트로 음식메뉴를 정하고 음악도 셋업, 장식까지 야무지게 챙겨 캠핑장으로 떠났다.
이천 야한카페(청학서당) 캠핑장
2020.12.12~13, A사이트
이른 크리스마스 캠핑.
이번에도 이천의 청학서당 캠핑장으로 떠났다. 이제는 청학서당이 아닌 야한카페 캠핑장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지만 입에 영 붙지가 않는다. 이상한 의미가 아닌 밤 야, 한가할 한을 쓰는 한자어다. 어쨌거나 이천으로 캠핑을 떠났고 이번 컨셉은 크리스마스다. 크리스마스까지는 아직 2주나 남았었지만 원래 12월은 한 달 내내 크리스마스로 보는 게 맞다고 생각하다. 사실 나는 날이 추워져서 '아 이제 겨울인데?' 싶은 순간부터 크리스마스 모드이긴 하다. 할로윈캠핑 때 깨달았듯 내 취향은 주렁주렁이라서 이번에도 텐트에 열심히 크리스마스 장식을 달았다. 사이트에 소나무가 있어 별 거 안해도 이미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풍기기도 했다. 친구가 가져온 트리도 들여놓고 맥주 케그마저 초록색, 빨간색으로 깔맞춤 하기 위해 하이네켄으로 구매했다.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나는 음악들로 리스트도 만들어 틀어두니 연말 기분이 물씬 났다.
밤이 되니 너무 추워 밖에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날씨가 되었다. 친구는 캠핑카 유저인데 캠핑카 안에 들어가면 따뜻하긴 하겠지만 캠핑 느낌은 아무래도 덜할 것 같아서 전실에서 버텨보기로 했다. 친구가 챙겨 온 팬히터로 전실에 바람을 불어넣으며 새벽녘까지 열심히 놀았다. 보통 매너 타임이 있으니 밤에는 음악 틀고 놀기가 어려운데 독립사이트라 옆 이웃이 없어서 신경이 덜 쓰였다. 물론 화장실 가는 길에 보니 다른 사이트도 시끌벅적 난리이긴 했다. 청학서당 캠핑장이 원래 이런 것인지 연말이라 한시적으로 분위기가 풀렸던 것인지는 모르겠다. 어쨌거나 우리는 우리끼리 있으니 좋았다. 이래서 사람들이 독립 사이트를 찾는구나. 독립 사이트는 일반적으로 편의시설과 거리가 멀기 마련인데 이곳은 화장실, 샤워장 바로 뒤라 그 점도 좋았다.
콜맨 오아시스 첫 피칭.
동계캠핑용 텐트는 아니지만 아무렴 어떠랴. 이번 캠핑에는 콜맨 오아시스 라지를 들고 왔다. 그런데 첫 피칭부터 녹록지가 않았다. 오아시스는 피칭이 어려운 텐트가 아니라서 일반적인 파쇄석 사이트였다면 쉽게 피칭을 끝냈을 텐데 우리가 묶은 사이트는 콘크리트 바닥에 고리가 박혀있는 형태였다. 팩을 박아야 하는 위치와 이미 박혀있는 고리 위치가 한참 동떨어져있다 보니 스트링이며 탄성 로프, 카라비너로 피칭을 해보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텐트가 공중에 붕 뜨는 구조가 되어버렸다. 만약 자립이 가능한 형태의 텐트였다면 큰 문제가 아니었을 텐데 오아시스는 바닥이 고정되어야 형태가 유지되는 구조라서 한참을 애를 먹었다. 첫 피칭에 모르는 장소로 오는 게 아니었는데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폴을 하나씩 붙잡고 낑낑대며 겨우 형태를 만들었다.
어찌어찌 텐트를 세우고 보니 이번에는 전실을 만들고 사이드월을 치는 것이 문제였다. 오아시스는 통째로 커버되는 베스티블이 아닌 조각조각 이어 붙여 텐트를 감싸야하는데 처음이다 보니 어디가 어디인지 앞인지 뒤인지 구분이 잘 안되었던 것이다. 이게 맞네 저게 맞네 실랑이를 한참 하다 유튜브의 설치 동영상을 참고한 후에야 텐트 피칭을 끝낼 수 있었다. 물론 그 와중에도 틀렸다.
펑펑 눈 내리는 날의 설중 캠핑.
아침에 눈을 뜨니 눈이 내려 하늘이 온통 하얀색이었다. 펑펑 내리는 함박눈은 금방 쌓여 나무와 캠핑장 전체를 뒤덮었다. 근래에 이렇게 많은 눈을 본 적이 있던가? 내리는 눈을 한참 바라보며 밖에 서 있었다. 지난밤에는 그렇게 춥더니 눈이 오니 오히려 날씨가 포근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B사이트의 어린이 친구들이 잠에서 깼는지 하나둘 나와 눈사람을 만들기 시작했다. 마음 같아서는 나도 눈사람을 만들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몸살감기에 걸릴 게 뻔하므로 가만히 앉아 구경만 하기로 했다. 우중 캠핑도 낭만적이지만 설중 캠핑은 정말이지 영화 같았다.
청학서당 캠핑장의 한 가지 큰 장점은 다음날 예약자가 없는 경우라면 늦은 퇴실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덕분에 내리는 눈을 맞으며 철수할 필요 없이 느긋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이후로도 눈은 많이 왔지만 캠핑장에서 눈을 맞이하는 것은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언제 또 이만큼 펑펑 쏟아지는 눈을 맞으며 캠핑을 할 수 있으려나. 비는 피하고 싶지만 눈은 한 번 더 맞이하고 싶다. 함박눈과 함께 한 이른 크리스마스 캠핑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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