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캠핑을 친구와 함께 시끌벅적 보냈으니 연말은 조용하게 보내고 싶었다. 때문에 이번에는 조용한 곳을 1순위로 두고 캠핑장을 찾았다. 아직 난로가 없어 캠핑장에서 대여해야 하기 때문에 난로 대여가 가능한 캠핑장 인지도 중요했다. 선택은 금방 끝났다. 난로 대여가 가능하며 내가 가고 싶은 날짜에 예약이 가능한 곳이 의외로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몇 군데 캠핑장을 후보에 두고 추리던 중 관리가 잘되기로 소문났다는 제천의 달재캠핑장이 눈에 들어왔다. 추천하는 이가 많기에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당일에 예약이 불가능했음에도 떠나기로 했다. 여유 있게 보내야 하니 이번에는 2박 3일이다.
제천 달재캠핑장
2020.12.26~28, A사이트 5번
'달재캠핑장'은 A, B, C 세 구역이 있다. 세 구역 모두 규모가 크지 않아 사이트수가 많지 않아 사이트 간 간격이 어느 정도 확보되며 사이트 바로 옆 혹은 뒤에 주차가 가능하다. A와 B는 진입로 근처 편의동 양 옆으로 있는 구역이며 C는 오르막 위에서 다른 사이트들을 바라보는 구조다. 어느 자리를 택하든 다른 캠퍼와 마주 보거나 복작일 일은 없다. 만약 타프가 없거나 장박을 계획 중이라면 천막이 설치되어 있는 A2~A4 자리도 좋다.
추천사이트: A 또는 C구역이나 사실 모든 자리가 비슷하다.
조용하다 못해 적막한 캠핑장.
달재캠핑장의 첫인상은 조용하다 못해 적막하다는 것이었다. 덕동계곡 상류에 위치한 캠핑장이었지만 겨울이라 물이 꽝꽝 얼었기 때문에 물소리마저 들리지 않았다. 겨울이라 풀벌레 소리도 들리지 않으니 그야말로 고요했다. 캠장님이 조용한 캠핑장을 지향하며 관리를 열심히 하신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아이가 있는 가족도 반려동물을 데려온 가족도 있었는데 강아지와 아이들마저 조용했다.
저절로 몸짓이 조심스러워져 조용히 우리 사이트를 찾아 얌전히 짐을 내려놓았다. 하지만 평화로운 분위기와 달리 피칭은 어려웠다. 땅이 완전히 얼어 팩이 잘 박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텐트 크기가 있다 보니 원래는 40cm 단조 팩을 주로 사용했는데 이 땅에는 택도 없을 것 같아 20cm로 바꿔 망치질을 해보았지만 여전히 어려웠다. 알고 보니 동계에는 '핑거 팩'이라고 불리는 짧은 팩을 쓴다던데 캠핑 초보인 내가 알리가 없었다. 조용한 캠핑장에 '깡- 깡- 깡-'하는 망치질 소리가 한참 울려 퍼졌다. 결국 반쯤은 팩이 박혀있고 반쯤은 주변의 돌로 눌러둔 채로 대충 마무리하는 수밖에 없었다.
피칭에 시간을 너무 많이 보내는 바람에 모든 것이 뒤로 밀렸다. 아직 짐을 채 풀지도 못했는데 해가 이미 저물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 빌려온 난로에는 기름이 들어있지 않았다. 난로 심지가 충분히 적셔지려면 기름을 넣은 후 적어도 1시간 이상은 지나야 하기 때문이다. 해가 저물자마자 추위는 닥쳐오는데 난로는 켜지려면 멀었으니 큰일이 아닐 수 없었다. 턱이 덜덜 떨릴 정도로 추위가 밀려와 아쉬운 대로 바닥이라도 데우려고 전기장판을 켰지만 강추위에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난로가 켜지기 전에 잠깐 손을 데울 용도로 툴콘을 켰는데 바로 차단기가 내려가버렸다. 전기장판이 75w라고 생각했는데 100w를 넘었었나 보다. 한 사이트당 전력사용량이 600w 미만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차단기가 내려가는 곳은 처음이라 당황스러웠다. 어쩌지 고민할 틈도 없이 캠장님이 바로 달려오셔 해결해주셨다.
처음 사용해 본 난로 - 파세코 PKH 6400.
평화는 난로가 켜진 후에야 찾아왔다. 캠핑용품 치고 부피가 좀 있긴 해도 그래 봤자 조그만 난로일 뿐인데 텐트부터 전실까지 꽤 큰 공간을 데울 정도의 화력이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난로를 쓰는구나 절로 깨달음이 온다. 콜맨 오아시스는 높이가 240cm로 높은 편이라 위로 뜨는 열기를 아래로 내리기 위해 실링팬을 달아둔 덕분에 공기가 금세 훈훈해졌다. 단시간에 데워지는 공기에 건조할까 걱정되어 난로 위에 물 채운 냄비를 올려두니 딱이었다. 공기가 훈훈해진 후에야 몸을 움직일 생각이 들어 저녁식사도 하고 빔 프로젝터로 영화도 한 편 감상했다.
끊긴 기억, 밀려오는 숙취.
추웠다 따뜻해진 탓에 피곤했던 것인지 술을 그리 많이 마신 것 같지 않았는데 필름이 끊겨버렸다. 캠핑장에서 필름이 끊기다니 처음 있는 일이었다. 문제는 기억만 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심한 숙취가 몰려왔다는 것이다. 2박 일정으로 왔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더 큰일 날 뻔했다. 아침은커녕 점심이 지나고 늦은 오후가 되도록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두통과 함께 속이 울렁거리는 통에 밥을 먹을 수가 없어 매점에서 사 온 음료수로 끼니를 때웠을 정도니 말 다했다. 결국 계획했던 모든 일정 대신 온종일 누워서 시간을 보낸 뒤 저녁은 산 아래로 내려가 사 오기로 했다. 이제 와 식재료를 손질해 요리를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지체되었기 때문이다. 캠핑장에서 15분 정도 나가니 마트와 호프 등이 있어 치킨과 어묵탕을 포장해왔다. 캠핑 와서 음식을 사 먹다니 여러모로 처음 해보는 경험이다.
이런 날도 있는 거지.
분명 여유를 즐기려고 2박 3일 일정으로 왔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또 마지막 밤이다. 시간이 너무 아까웠지만 이미 지나가버린 걸 별 수 있나. 이런 날도 있는 거지 위안하며 지나가버린 크리스마스와 연말 감성을 애써 이어보았다. 캠핑장은 고요하고 평화로웠지만 나는 혼자서 너무 치열했던 캠핑이었다. 2020년을 이렇게 마무리하다니 어떤 의미로는 참 나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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